“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 1:18)

 

골로새서 1:15부터 시작되는 본 찬송시의 전반부는 예수님과 창조계와의 관계를 다룬 것이었습니다. 이제 후반부는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전반부가 첫 창조에 대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재 창조에 대한 것입니다. 이 재 창조의 내용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당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서 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 찬송시에서 가장 실감이 가지 않는 대목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라’ 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머리로 계신 것 같습니까? 차라리 꼬리로 계신다고 해야 더 맞을지 모릅니다. 교회의 머리는 목사와 장로들이고, 교회의 몸은 교회당 건물이며, 교회의 능력은 헌금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언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의 현실을 일반화시킨 과장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교회들의 실태에 대한 진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말도 아닌 줄 압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여러 면에서 반드시 갱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럼 교회 갱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해답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인 교회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매우 간단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붙잡고 적용한다면 어떤 교회도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라는 사실 앞에 우리들의 머리를 조아릴 수 있다면 교회 문제는 모두 해결됩니다. 말을 뒤집으면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받들지 않으면 자기 머리들을 내밀기 때문에 문제 투성이가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교회를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고,

♦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고,

♦ 교회의 소유주가 예수님이고,

♦ 교회의 방향을 제시하시는 분이 예수님이고,

♦ 교회의 내용을 채우는 분이 예수님이고,

♦ 교회의 능력이 예수님이고,

♦ 교회를 운영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이 같은 주권 앞에 우리들의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면 교회는 회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머리가 예수님의 머리 아래 있지 않고 올라오면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가 되지 않고, 우리 교회가 되고 맙니다.

 

✚ 성경에는 예수님의 교회는 있지만 우리 교회는 없습니다.

✚ 하나님의 교회는 있지만 내 교회는 없습니다.

✚ 하나님의 성도들은 있지만 내 교인들은 없습니다. 교회에 관한 한, 내가 소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성경에는 주님이 시작한 주님의 교회만 있습니다. 내가 시작한 내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내 교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고전 1:2; 고후 1:1). 비록 내가 교회를 개척하고 세웠다고 하여도 진정한 의미에서 그 교회는 내가 세운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나는 단지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을 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부르셨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으며, 주님의 몸에 연합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에 ‘내가 너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혹은 ‘베드로가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마 16: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시지 않은 교회는 자기 교회는 될지 몰라도, 예수님의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예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이 주관하시며,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지 않으면, 목사가 교회를 자기 소유로 보거나 장로가 교회를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교회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비성경적인 활동들의 원인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받들지 않으면 매사에서 자기 머리로 처리합니다. 자기 머리는 세상에 속한 머리입니다. 그래서 자기 머리로 행하는 것은 세속적인 방법들입니다.

 

★ 인간적인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 인간적인 표준으로 교인들을 구별하고,

★ 인간적인 방법으로 헌금을 요구하며,

★ 인간적인 고려에서 직분을 줍니다.

 

심지어 장로의 직분을 놓고 고액의 감사 헌금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장로가 되면 교회에 기물을 바쳤는데 이제는 웬만한 교회에 그런 장비들이 다 있으니까 주로 현금이 왔다 갔다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매관매직을 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여도 교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심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교회의 머리를 예수님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재 이 맘몬신을 제거시킨 능력이 없습니다. 요즘 웬만한 교회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부자라”(계 3:17)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돈을 잘 사용하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직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헌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재앙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는 이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지 못하면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서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 인간적인 잣대로 교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몸통을 키우고,

★ 인간적인 사상으로 설교를 하고,

★ 인간적인 목적으로 교회당을 짓고,

★ 인간적인 동기에서 목사가 되고,

★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믿지도 않는데 세례나 성찬을 주고,

★ 인간적인 이유로 교회를 다닙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타락할까요?

➲ 초자연적인 원천을 둔 교회가 인간적인 하급 종교로 변질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지 않고 돈과 권력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방식과, 예수님의 목표가 제쳐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머리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머리만 무수히 보이는 것입니다.

 

▣ 이런 교회들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는 교회 전략에 온 힘을 쏟고, 예수님을 머리로 모셔야 할 곳에 성공주의와 엔터테인먼트의 깃발을 꽂습니다. 현대 교회는 그런 상업적인 마케팅과 경영 위주의 기업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로 교회를 이야기 할 때에는 개교회보다 전체 교회를 놓고 우리 자신을 포함시켜서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 현대 교회의 특징은 십자가의 표시는 있어도 십자가의 실체가 없고, 기독교의 간판은 붙었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써 오늘 날 우리 나라 교회에 수없이 세운 십자가 표시는 교회를 오히려 혐오하게 만듭니다.과거에는 종탑을 세우고 종을 쳤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종을 치는 교회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돈이 많아지니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밤새껏 환하게 켜놓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빛 공해로 잠을 잘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 관계 부처에 민원을 내어도 현재로서는 규제할 법이 없다고 한답니다. 교회에 진정을 내지만 합법이라고 막무가내랍니다. 이것은 며칠 전에 뉴스에 난 기사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고린도전시 10장 23-24절을 읽어 보십시오. 합법이라고 해서  다 유익하지 않고, 허용된다고 해서 다 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지 이웃이 이사를 가야 할 정도로 ‘빛 공해’가 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내 교회 선전만 되면 이웃이야 잠을 자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식이라면 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르치는 곳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돈을 오용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러한 여러 모순들을 반드시 시정해야 합니다.

 

❂ 성경을 펼쳐 놓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 신자들이 모인 곳에서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습은 찾기 어렵습니다.

❂ 찬양대를 향한 박수소리는 요란하여도 하나님의 보좌를 향한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 목사는 우대를 받아도 예수님은 천대를 받습니다.

❂ 활동은 많아도 사랑은 적고,

❂ 성경책은 많아도 성경의 지식은 천박합니다.

❂ 말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고 하면서 막대한 돈을 내 돈처럼 무책임하게 사용합니다. 물론 가난한 교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돈을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입니다. 요즘 미디어에 폭로되고 있는 일부 교회 재정 현실은 그야말로 경악할 정도입니다.

 

❂ 영성은 지나가는 유행어가 되었고, 헌신은 낡은 헌신발이 되었으며, 기독교는 다원종교의 하나로 몰락되었습니다.

❂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하지만, 머리 없는 교회들이 더 득세를 하고 더 인기가 있습니다.

 

▣ 사람들은 교회란 내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필요를 주문 받기 위해서 언제나 대기 중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의 필요만 채워지고 나면 구태여 하나님이 교회에 안 계셔도 지장이 없습니다. 주일 날 교회에 왔다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주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또 성령의 능력도 체험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서운해 하고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하나님을 찾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님이 교회에서 과연 얼마나 중요한 분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존중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이 머리가 되시든 꼬리가 되시든 별로 상관 없다고 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 구태여 따지지 않더라도 교회 잘 다닐 수 있다고 하실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 그런데 신경 쓰지 않고도 편안하게 얼마든지 다닐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선출을 둘러싼 돈 선거 비리와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막대한 교회 자금 유용을 비롯한 갖가지 스캔들이 연일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개탄하는 어떤 분이 지난 달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어긋난다. 개신교 역사상 지금의 한국 교회만큼 타락한 교회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사실상 2-3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당시 소수이긴 했지만 우리나라 개신교회가 복음 메시지를 내던지고 기복 사상과 배금주의 헌금론을 가르치는 것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런 풍조가 지속되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 개신교가 물신주의에 빠져 세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가르쳤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 15년 전에 ‘십자가와 헌금’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목사님들이 이 책을 금서처럼 못 읽게 하였고 평신도들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십일조 내면 복받는다는 가르침이 거의 절대 진리처럼 머리에 박혀 있었고 이미 바알 신이 신자들의 영혼과 강대상을 점령한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교회에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돈 문제로 개신교회가 더 타락하였기에 2009년에 저의 책을 ‘헌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시 재판해서 냈습니다. 아이로니칼 하게도 지금은 베스트 셀러 상위권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 봤자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한 달에 50권만 나가도 베스트 셀러에 들어갑니다. 아무튼 이제 의식이 좀 깨인 교인들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한 작은 증거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인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내가 받은 은사와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몰라서 궁금해 하십니까?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한 가지 공통된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갱신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각자가 ‘이 시대’에 맡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입니다. 왜 우리들이 이 시대라는 말을 강조해야 할까요? 이 시대에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단순히 반(反) 기독교 세력이라고 일소에 붙일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를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자기 백성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우상숭배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질책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듣지 않고 선지자들을 홀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더 타락하여 여호와의 제단 곁에 바알 신의 제단을 세워놓고 바알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혼합주의라고 부릅니다. 공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하고서 내용적으로는 바알 신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어 놓은 교회들이 기복 신앙과 성공주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선지자들의 말을 멸시하고 계속해서 우상 숭배를 하면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 이방나라인 포악한 앗수르와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나라가 망하게 하셨습니다.

 

☞ 여러분 요나 선지자의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그가 탄 배가 하나님이 일으키신 파도로 크게 요동치자 선원들이 폭풍의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를 알려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랬더니 요나 선지자가 걸렸습니다. 이방인 선원들이 그 때 요나 선지자를 보고 이렇게 묻지 않았습니까?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욘 1:10).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타락하면 처음에는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불신자들의 입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규탄하십니다.

 

오늘날 개신교가 개독교가 되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비난과 욕설을 듣는 것은 결코 일부 반기독교 세력들의 악담만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마지막 단계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자체적으로 회개하고 우상을 내던질 뜻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고발하십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서운 징계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회들은 개혁되어야 하고 갱신해야 합니다. 때가 늦기 전에 마지막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그것이 나와 지금 다니는 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상관이 있습니다.이곳에서 늘 사시는 교인들은 이 교회가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대부분 자유롭다고 할지라도 더욱 올바르게 세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대부분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실 것입니다. 고국이든 어디든 가시는 교회에서 교회 갱신의 소명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갱신될 수 있습니까?

교회 갱신의 열쇠는,

✚ 잃어버린 주 예수의 머리를 다시 찾는 것입니다.

✚ 실종된 복음을 회수하는 것입니다.

✚ 사라진 성도들을 다시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갱신을 논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볼 때에 현상만 보고 한탄만 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머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교회를 자신이 스스로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머리 되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훨씬 더 긴 안목으로 교회의 장래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타락한 첫 창조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를 세우시고 만유를 통일시킬 재 창조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재 창조 계획에 따라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현실이 아무리 어두워도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께서 자기 몸을 지키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머리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우리 머리를 조아린다면 교회는 아무리 타락했어도 갱신될 수 있고 부흥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께 속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교회를 단체 조직으로만 보면 교회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은 빠지게 됩니다.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고 할 때, 갱신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조직체로서의 교회라기 보다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하고 머리 되신 주님의 지시와 뜻을 따라서 교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영적 개혁과 회개에서부터 먼저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 각자가 받은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교회를 갱신하는 것입니다.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라고 하는 우리들의 교회를 위해, 우선 나부터 그리고 다 함께 개혁의 옷깃을 여미도록 하십시다.  이 일에 주께서 큰 은헤를 베푸셔서 우리들이 교회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뜻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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