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궁금하게 여기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상에 대한 성경의 해당 본문들을 놓고 충분히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의 주제는 광범위합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거룩한 삶은 상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잠시 몇 가지 궁금한 질문들을 먼저 간단하게 답하기로 합니다.

1) 상은 믿음과 상관 없이 순전히 노력의 결과로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상은 믿음의 노력이며,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격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상을 받지는 않습니다. 마치 육상 선수처럼 트랙의 출발점에 나가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을지라도 본인이 달리지 않고 그대로 서 있으면 실격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 비교. 마 16:27)고 하였습니다. 각자가 노력하여 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도 하나님의 상을 당연한 자신의 권리로 받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자신이 힘써 달린 결과로 상을 받아도 그것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것도 주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에 바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을 위해 달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상의 약속을 믿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고 하였습니다. 유업의 약속을 상속받으려면 인내와 노력만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열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가치 있는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받은 소명에 충실하였고 마침내 유업의 상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진술에서 두드러진 key word는 ‘믿음으로’라는 말임을 주목하십시오.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 상을 위해 달리는 출발점은 우리들의 확실하고 영원한 구원입니다. 경주의 자격을 주는 것은 구원이고, 경주를 하는 목적은 상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달리기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 선수들입니다.

♦ 믿음의 경주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내 발로 달려야 하지만 달릴 수 있는 힘은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내 힘에 의존하면 곧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인격체 깊은 곳에 내주하시면서 내가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도 달릴 수 없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 어떤 자세로 경주에 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출발점에 서 있기만 하거나 성의 없이 달리면 상을 받지 못합니다. 흔히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여기서는 맞지 않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얼굴만 내밀고 호명할 때 대답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경기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을 받도록 달리기를 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위해 상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후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받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자세로 달리거나 혹은 출발점에 그냥 서 있기만 하면 아버지의 선한 뜻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나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 필요가 있는가?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무슨 상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나라를 위한 자녀들의 선행과 믿음의 삶을 상으로 갚아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힘써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는 것은 우리들의 눈에도 좋게 보여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에 믿음 생활의 눈금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에 자신의 목표와 선행의 동기를 맞추십시오.

2) 상은 무엇인가?

성경은 상에 대한 약속을 하고 상을 받아야 한다고 격려하지만 정확하게 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설명은 적습니다.  이것은 아마 상의 성격이 주로 사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후 천국에 대한 진술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이고 비유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후 천국의 그림을 정확하게 그릴 수 없습니다. 사후에 대한 것은 현재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설명될 수 없는 불편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천국에 대한 여러 가르침과 상징들을 통해서 천국의 본질과 모습을 소망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에 관한 것도 신구약의 여러 가르침들을 통해서 원칙적이고 대략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상에 대한 가르침 중에서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말씀이 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이라고 봅니다.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소유를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각 종들은 자신의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했습니다. 달란트를 잘 관리하여 주인에게 이익을 준 종들은 칭찬을 받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게으른 종은 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신실한 종들에게 한 말이 중요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

상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라는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잘 수행한 충성된 삶에 대한 인정을 받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은 더 많은 책임을 맡는 일로 연결된다고 하였습니다.

 

3) 상은 언제 받는가?

상은 현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세에서 받습니다. 상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과 같습니다(눅 12:33; 마 6:20; 딤전 6:18-19).  바울은 이것을 ‘하늘에 쌓아 둔 소망’(골 1:5)이라고 불렀습니다.

4) 상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인가?

주로 영적이지만 가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해 잃은 것들을 회복시켜 주기도 하십니다. 이것은 평판이나 혹은 물질의 만회처럼 가시적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영적인 성격이 큽니다. 예컨대, 현재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확신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며, 주의 뜻 가운데 있다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영역이 넓혀지거나 사역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미래적인 상은 부활한 몸의 가시적인 영광과 주님으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 영예 및 더 많은 책임과 다스림의 청지기직 등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은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이며 가시적이고도 비가시적입니다. 그러나 현 세상에서 받는 상은 미래에 받을 상에 대한 극히 부분적인 시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조. 마 19:27-30).

5) 상은 천국인가?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확보된 것입니다. 어둠의 나라에 있다가 빛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은 믿음과 함께 동시적으로 오는 소속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고 의롭다는 선언을 받는 칭의의 구원은 일회적이며 오직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이 구원은  선행으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었다가 사후에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자신의 선행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상은 천국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상은 천국 안에 쌓이는 보물입니다(마 6:19-29). 상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구원은 절대로 상실될 수 없습니다.  한 번 사람이 출생했으면 그 출생이 취소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상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에 천국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는 어둠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갑니다(골 1:13-14). 이것은 취소되지 않는 결정적이고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러나 상은 믿음과 인내와 근면함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기에 천국과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6) 상급 사상은 이기적이 아닌가?

주 안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 상을 받습니다. 자신을 섬기는 자들은 상을 받지 못합니다. 상이 어떤 자들에게 주어지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상은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며 믿음과 인내로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신실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상을 바라는 것 자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얻기를 원하시는 유업을 위해 사는 것은 순종의 삶입니다. 상은 사랑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사랑의 삶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상급 교리는 이타적인 삶을 격려하는 가르침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달려가는 것이기에 신자의 마땅한 본분에 충실한 일입니다. 이러한 삶에 하늘의 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쁜 뜻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일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추구는 본인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에서 자기 이익이 고려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익 추구를 장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희생과 충성의 삶에 피차 유익이 오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희생적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 주고 나면 마음에 큰 위로가 있습니다. 용서를 하여도 마음에 평강이 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행에 따르는 축복이 있도록 디자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위해 사는 사랑과 헌신의 삶에는 영적 심리적 유익이 있도록 선행의 메커니즘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놓고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선물입니다. 이기적인 동기에서 상 받기를 시도하는 자들은 곧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믿음과 인내로 유업의 상을 향해 맥진하는 삶에 금방 지치고 맙니다. 오직 십자가의 사랑에 압도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젖은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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