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강해(17)

아들의 선물

(열왕기하 4:11-17)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왕하 4:13).

수넴 여자는 엘리사뿐만이 아니고 그를 수종 드는 게하시까지 함께 ‘세심한 배려’를 하며 모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모범과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큰 은혜를 받고도 자기 것만 챙기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를 자기 집에 모시고 손수 음식을 장만하여 올렸습니다.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입니까? 이것은 그저 밥 한 그릇 대접했다고 생각하면 별것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의 선지자들에게는 요즘처럼 사례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백성들의 자선에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들에게는 한 그릇의 음식 대접을 받는 것도 큰 감사의 소재였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공식 종교 기관이 인정하는 사역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수입이 없었습니다. 누가 음식을 대접하면 드시고 안 그러면 식사를 걸러야 했습니다. 한 번은 너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혹시 열매가 달렸을까 해서 가까이 가 보신 적도 있었습니다(막 11:12-14). 우리는 이 사건을 당시의 예루살렘 종교의 열매 없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비유라고 여기고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 죽게 하신 것은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영적 가르침을 위한 비유 이전에 예수님 자신이 정말 식사를 못 하셔서 몹시 굶주리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에 주님의 혜택을 받은 자들이 어찌 한두 사람이었겠습니까? 주님 덕분에 병 나은 사람과 기적의 음식을 먹었던 자들은 수 만 명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천국 메시지를 들은 자들도 매우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식사를 못 하셔서 무화과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셨다는 사실이 말이 됩니까? 놀랍게도 우리는 잘 먹으면서 주님은 굶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양심에 가책을 못 느끼고 삽니다. 오늘날 주님을 섬기는 형제자매들이 굶주리며 사는 한, 주님은 아직도 무화과나무를 향해 걸어가십니다. 우리 앞을 지나는 오늘의 엘리사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는 한, 주님은 쉴 곳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별다른 지원이 없이 묵묵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보내시는 우리들의 엘리사들은 식사가 필요하고 촛대가 필요하고 데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를 따르는 주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31-40). 주님은 그를 섬기는 가난한 형제들과 자신을 일치시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관심과 결의가 없으면 엘리사가 수넴에 도착한 그 ‘하루’를 놓치고 맙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엘리사들이 우리들의 수넴 마을을 지나가는지 눈을 뜨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기대하며 하루를 지켜보십시오. 이런 의미에서 수넴 여자의 자세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8절).

수넴 여자는 이 ‘하루’를 주님을 섬길 기회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한 여자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을 섬기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수넴 여자의 스토리가 성경에 기록되는 경이로운 기회였습니다. 만약 그녀가 이 섬김의 기회를 놓쳤더라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의식하고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녀는 자기가 후 세대에게 얼마나 큰 축복의 모델로 기억될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수천 년 후에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 왔을 때 수넴 여자의 스토리도 함께 들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녀의 스토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에 이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스토리는 온 세상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후히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자의 친절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왕이나 사령관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왕하 4:13). 수넴 여자가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13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참 멋있는 말입니다.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담대한 대답입니까!

이 말은 수넴 여자의 인품과 영성을 한 마디로 대변한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가질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족하는 자였습니다. 수넴 여자는 자기가 부유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부자는 자신들이 부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역설이지만 가난한 자들이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부자들이 언제나 더 큰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들의 물욕은 끝이 없습니다.

수넴 여자는 남편이 크게 출세를 할 수 있고 자신도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소원 성취의 기회를 사양하였습니다. 참 경건은 분수 이외의 삶을 원치 않습니다. 수넴 여자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을 엘리사에게 분명히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그녀가 엘리사를 대접한 목적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한 일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수넴 여자는 처음에 엘리사가 식사 대접을 사양했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사는 수넴 여자의 사양에 꺾이지 않고 그녀에게 줄 보상을 생각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다시 불러 예언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4:16).

수넴 여자에게는 행복한 삶을 함께 즐길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만족하였습니다. 이런 자족의 자세를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몹시 가난하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가진 것이  적지 않은데도 이를 감사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수넴 여자는 자식을 원했을 테지만 그것 때문에 한(恨)으로 삼고 날마다 넋두리를 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살았다면 엘리사의 제안에 금방 자식을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의 깊은 소원과 열망을 아십니다. 우리가 자족하면서 겸비하게 꾸준히 주를 섬기면 삶이 바뀌는 섭리의 ‘하루가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넴 여자가 엘리사에게 베푼 친절한 배려에 대해서 가장 좋은 선물로 갚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 한 잔의 친절도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때가 되어 수넴 여자에게 성취되었습니다(왕하 4:17). 이로써 수넴 여자는 이삭을 낳은 사라와 사무엘을 낳은 한나와 삼손을 낳은 마노아의 아내와 같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자들과 나란히 자녀를 기적의 선물로 받은 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후하신 분입니까! 불임이었던 여자가 자식을 얻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수넴 여자는 하나님께 유감을 품지 않고 엘리사 선지자를 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자식을 낳자 그녀의 수치는 일순간에 다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삶에 넘치는 기쁨이 찾아 왔습니다. 수넴 여자는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초자연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섬김을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빚을 지신 것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누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께 빚을 지울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수넴 여자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베푼 친절을 마치 자신이 갚으셔야 할 빚으로 여기시고 크게 보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은혜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섬김이 지극히 일시적이고 이기적이며 성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꾸준한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이바지하는 자들에게 유업의 상을 내리십니다(히 6:12). 수넴 여자 집은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없던 자식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로 인해서 오는 기쁨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럼 이 기적의 아이를 받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진지하고 꾸준하게 섬기면서 자족하는 자세를 가지면 부족함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사양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갚아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 마음으로 의무와 체면의 한계를 넘어서 주님을 섬길 때 후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이기적인 동기에서나 형식적인 봉사가 아닌, 참사랑으로 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는 커다란 감사의 소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없다고 불평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없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진정한 관심과 흥미가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으면 우리의 영적 시야가 밝아져서 여기저기에서 섬김의 기회를 보게 됩니다. 작은 기회처럼 보여도 좋은 청지기가 되면 수넴 여자처럼 더 크고 많은 기회를 받게 될 것입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를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어떻게 갚아 주셨습니까? 없던 아들을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그녀의 선행은 오는 여러 세대에게 교훈과 모범이 되도록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녀는 사후에도 계속해서 주님의 나라를 섬기고 있는 셈입니다.

‘하루는’ 평범한 나날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섭리의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마음으로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주님을 섬겨 나가는 ‘하루하루’는 하나님의 넘치는 후한 보상의 은혜를 체험하는 또 다른 섭리의 하루로 연결될 때가 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습니다. 그 하루는 수넴 여자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집에 모시게 되는 영광스런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가 왔습니다. 그 날에 엘리사는 수넴 여자가 마련한 방으로 들어와서 수넴 여자를 부르고 기적의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들의 ‘하루’를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라보십시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선포되는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하루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나의 영적 삶에 큰 축복이 되게 하십시오. 오늘 하루가 여호와께 속한 섭리의 하루가 되도록 우리 모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게 하시고 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자들을 보내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봉사와 사랑의 삶을 통해서 나에게도 복이 내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우리에게 복이 부어지는 방식입니다.

****

 

 

 

Share Button
1561 Total 2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