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강해(13) 

한 과부의 기름병

열왕기하 4:1-7

 

본 에피소드는 앞 장에 있었던 사건과 대조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 장은 열왕기하 3장인데 이스라엘이 모압과 전쟁을 하려고 유다 왕과 에돔 왕까지 끌어 들였습니다. 그러나 군대가 교전도 하기 전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모압의 선제 공격을 받는다면 전멸할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 때 세 왕들이 마침 근처에 머물던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개천을 많이 파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3:16). 그들은 물도 넉넉히 얻었고 전쟁에도 승리하였습니다.

이 사건 후에 이어서 소개되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느 과부의 기름 에피소드입니다. 이 두 사건은 대조적입니다. 전자는 왕들을 상대로 하였고 후자는 한 개인을 상대로 하였습니다. 전자는 왕관을 쓰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국왕들이고 후자는 존재가 없는 초라한 한 가난한 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서 왕들에게 개천을 파라고 하셨고, 한 과부에게는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자는 공적이고 후자는 사적입니다. 전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이 드러나서 나라가 위기에서 구출되는 것이고 후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난과 종살이의 위기에서 구출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골짜기에서 도랑을 파는 일이었고, 후자는 방에서 문을 닫고 기름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전자는 공적이고 국가적인 축복이며 후자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은 양면적입니다.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왕들과 국가의 위기를 구출해 주기도 하시지만, 한 가난한 과부의 참담한 생활고(生活苦)도 들어주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우리들의 골방의 문은 항상 닫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1. 경건한 삶을 남기고 가십시오.

한 과부가 엘리사에게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4:1)

자기 아내로부터 경건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남편은 분명 영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부부처럼 가까이 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로부터 혹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경건을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죽은 남편에 대한 이 과부의 평가가 무엇입니까? 신학교 때 성적이 좋았고 은사도 많아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수 있었던 자인데 그만 아깝게 죽었다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오직 한 마디로 남편을 평가하였습니다. 자기 남편은 ‘여호와를 경외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죽은 남편이 못나서 빚을 잔뜩 남기고 간 무책임한 인간이었다고 허물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부가 죽은 남편에 대해서 평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평소의 관심이 어디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자녀들 과외 많이 시키고 좋은 학교 넣고 좋은 곳으로 결혼시키고  돈 많이 벌도록 온 마음을 쓰면서 살았을까요? 그녀는 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 초점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서 그녀가 기대한 것도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선지자 되는 것은 생활비도 안 나오니까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서로 경외하는 부부들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서러워하면서도 자기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그것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상기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떤 이미지를 남겨야 할까요? 나의 배우자나 자식들이나 혹은 이웃이 나를 경건한 자로 기억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큰 위로를 남기고 가는 셈입니다. 우리들이 이 과부에게서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삶의 가치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형편이 어떻든지 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알아주는  삶입니다.

  1. 경건은 가난을 막는 보호막이 아닙니다.

경건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 일에서 형통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경건이 반드시 가난의 보호막은 아닙니다. 이 과부의 죽은 남편은 엘리사도 인정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기초 생활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부득불 빚을 지게 되었고 이를 갚지도 못한 채 처자를 남겨 두고 죽었습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삶에 대한 보상을 항상 물질적인 것으로 대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번영 신학의 잘못입니다. 기도든 헌금이든 교회 봉사든 그 어떤 종교적인 행위도 지상적인 축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양심적으로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시하여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모두 가난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순종이 부족하거나 영적 사역을 위한 ‘긍정의 힘’이 부족해서 고난을 당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단 말입니까? 그들처럼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도 없었고 그들처럼 긍정적인 자세로 세상을 산 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어려운 삶을 살면서 박해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것은 역으로 보면 가난하다고 해서  경건하게 못산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은 경건을 막지 않습니다. 이 과부의 남편도 빈한한 생활을 하면서도 여호와를 신실하게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4:1).

반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고 해서 경건한 삶을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사례비를 많이 받는 목회자가 사례비를 적게 받는 목회자보다 더 경건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반대로 작은 사례비가 더 나은 경건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서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찾게 되는 이점(利點)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눅 6:20)이라고 하셨습니다.

한편 예산이 큰 교회나 재산이 많은 신자에게는 청지기로서의 무거운 책임이 따릅니다. 재물이 많은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어떻게 주님의 뜻에 따라 정직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재물이 넉넉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멸시하거나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는다고 해서 교만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영적 능력과 평강을 얻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불경해지기 보다 돈이 많아서 불경한 삶을 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합니다. 가난하든 부요하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날이 옵니다. 하나님은 무심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가정은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큰 자비를 체험합니다. 경건했던 선지자 생도는 가난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두 자식들은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지자의 아내로서 받는 경제적 고통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엘리사를 찾아와서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세와 믿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1. 기름 한 병은 무엇을 대변합니까?

엘리사를 찾아온 과부는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털어놓으며 호소하였습니다. 빚 때문에 두 아들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곧 성령의 감동으로 과부의 집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그녀가 어느 정도로 가난했는지를 말합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4:2).

개역성경으로는 2절의 그릇과 3절의 그릇에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우리말 번역본에서는(새번역. 킹제임스) 2절을 ‘기름 한 병’이라고 번역하여 3절의 그릇과 차이를 두었습니다. 영역은 ‘a pot of oil’ ‘a jar of oil’-(ESV), ‘a little oil’-(NIV)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소소한 문제 같지만 본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2절의 ‘그릇’은 용량이 적은 기름병(cruet)을 말합니다. 만약 돈이 될 만한 양의 기름이 있었다면 벌써 다 팔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4:2) 라는 말은 과부의 가난이 극심해서 이제 곧 굶어 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집에는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소량의 기름 한 병만 남았다는 말입니다. 빚도 하도 져서 더 이상 빌려 주는 자가 없습니다. 두 아들들은 곧 종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빚이 많았다는 시사입니다. 그런데 그 소량의 기름 한 병이 무슨 소용이 됩니까? 만약 엘리사가 묻지 않았다면 그 과부는 이 기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본 사건의 교훈을 포착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작은 기름 한 병은 그 과부의 속절없는 삶을 대변합니다. 우리 모두의 운명은 어떤 면에서 이 작은 기름 한 병에 불과합니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종으로 잡혀 가는 나의 자식들을 구해낼 자원이 될 수 없습니다. 작은 기름 한 병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제로입니다.

그럼 본문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은 기름 한 병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 무가치한 것이 무한한 가치로 일변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면 공포의 웅덩이에 동아줄이 내려오고, 절망의 계곡에 길이 뚫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나의 작은 기름병이 넘치는 풍요의 산실이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코리아 위클리 07.08.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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