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가?

본 글은 평소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교회 갱신에 대한 생각들을 간략하게 부분적으로 피력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 강설도 아니고 이상적인 교회관에 대한 총괄적인 진술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갱신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무엇인가 이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왜 교회 갱신이 필요한가?

교회 갱신은 특정한 시기에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 갱신은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생긴 때부터 있어 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거의 모든 서신들이 사실상 교회 갱신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시대부터 교회 갱신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받은 계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음을 희석시키고 혼잡하게 하며(고후 2:17) 자신의 유익을 위해 복음을 돈벌이와 명성을 위해 파는 거짓된 무리들의 영향이 문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왕되심의 신분을 부정하고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단들의 침입이 교회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는 갱신과 함께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그 성격상 어둠의 세력이 가장 싫어합니다. 교회가 사탄의 공격 목표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져야 할 자태를 진술할 때에 흔히 힘써 달리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3-27; 딤전 6:12; 딤후 4:7).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교훈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바울의 이러한 교훈과 경고는 각 시대마다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마다 교회는 세상의 유혹과 거짓된 가르침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존속하는 한, 교회 갱신의 필요성은 항존합니다. 이러한 교회 갱신은 종교개혁이나 청교도들의 교회 정화 운동과 같은 큰 획을 긋는 이벤트들에 국한시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각 교회와 각 신자들이 자신들이 받은 소명과 책임에 따라 교회 정화 운동에 참여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교회 갱신은 신약 성경이 항상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아무것도 고칠 필요가 없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정의 영역은 교회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또 나라별로도 상이한 배경과 문화적 배경에서 연유되는 특이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많은 교회에서 늘 볼 수 있고 자주 일어나는 비복음적이고 전형적인 현상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갱신의 주된 대상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 강단에서의 설교가 복음의 사상이 아닌 것들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경우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축복 사상, 성공주의, 긍정의 힘,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부정 등은 다수의 강단을 지배하고 있는 세속 사상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그릇된 사상의 영향으로 예수 믿는 것을 세상살이의 형통을 위한 것으로 보거나,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개인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오해합니다. 대부분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의 나라를 위한 의로운 삶에는 관심이 적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 사역자의 교회 성장관에도 상당한 교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인기 종목은 지난 수 십년 동안 교회 성장 이론에 따른 교회 경영기법과 교인수 증가 원리에 대한 노.하우가 대종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 심리학의 이론까지 도입되면서 성경 강해에 의한 영적 성장보다는 심리 설교를 통한  치유 사역이 유행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신약 성경의 방법과 사상에 일치하는지는 점검하고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포인트는 성경의 기본적인 사상과 가르침을 외면하고 목회자가 오직 교인수를 늘리고 교회당을 크게 짓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세상 방법까지도 동원하여 교회의 물량적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청지기직의 수행에서 시정할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교회는 헌금이 비성경적인 방식으로 강조되고 모아질 뿐만 아니라 용처와 관리면에서도 상당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오늘날 미디어에서 교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보도할 때에 가장 많이 대두되는 것의 하나가 교회 돈과 관련된 부패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깊이 침투해 있는 바알 신과 맘몬 신의 우상을 제거시키지 못하고 오랫동안 함께 동거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자식들을 줄줄이 수확하는 중입니다.

☞ 교회 안에 있는 계급주의

우리들의 교회는 아직도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적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등의 직책과 관련해서 피라밋 체제의 권위 시스템을 형성케 하였고 직분자와 비직분자에 대한 차등의식을 배태시켰습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권위주의적 전횡과 장로직을 놓고 물품이나 특별 헌금이 기대되는 폐습이 관습화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와 장로들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비화되는 수많은 사건들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직분상의 구조 자체에 있기 보다는 이를 운영할 때에 성경이 가르치는 직분이 지닌 본래의 의미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성도들의 영적 수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관찰과 경험에 의하면 신자들의 성경 지식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마다 성경 공부가 있고 매주 설교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성경의 극히 기본적인 교리나 복음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이해가 부진한 편입니다. 이것은 교회 교육의 내용과 효율성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게 합니다.

또한 개별 신자들의 실제적인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와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은 불신자는 물론이려니와 신자들 자신에게도 복음의 능력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합니다. 그래서 큰 교회 교인들이나 작은 교회 교인들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고,  좋은 설교자 밑에 있거나 않거나 삶의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들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수준과 너무 큰 대조를 이룹니다. 물론 신약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유치하고 미성숙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복음의 핵심을 숙지하고 있었고 구원의 확신이 있었으며 성령의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았습니다.

 3.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이상적인 모습이기에 우리들이 현재로서는 닿을 수 없는 수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의 전통적인 교회 문제들과 세상이 다 알도록 불거져나오는 부끄러운 교회상들은 뜻만 있다면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존 교회의 텃밭과 틀 안에서는 이런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도적으로도 힘들고 기존 교인들의 종교적 습성 때문에도 동의와 협력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리더들과 성도들의 마음이 설득이 되고 합쳐져서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 줄 압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약 교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면 훨씬 더 효과적인 교회로 발돋음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갱신된 교회의 새로운 모습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들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첫째, 교회가 관습적인 종교적 활동을 위한 모임의 성격을 벗어나서 복음의 진리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과, 성령의 감화로 엮어진  공동체라는 것을 증시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는 세속으로 물든 정화되지 못한 교회에서는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가 리얼하고 각 성도들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교회는 구원의 능력과 교제의 기쁨과 영적 생동감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에서는 복음의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고 용서와 화평의 길을 구하며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려는 심혼의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소원이 교회의 일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추진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를 기꺼이 섬기려는 마음이 생길 때에 다른 형제 자매들을 아끼고 돌보면서 자신의 삶에도 성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교회에 사회적 신분에 따른 계급이 없고, 헌금 문제로 불편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며, 유치하고 몰상식한 문제로 싸우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무력한 설교 때문에 예배 때마다 은혜 없는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면, 이 정도의 교회만 되어도 그 존재의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갱신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 있는 교회를 찾는 분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교회 문제로 갈등을 느끼며 고통받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아예 교회를 나가지 않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도를 한 후에도 교회를 소개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현실입니다. 교회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기꺼이 댈 수 있는 교회들이 많지 않은 것은 답답하고 서글픈 현상입니다.

다른 교회들이 다 형편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체로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하지 않는 교회들도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분들이 다시 크게 실망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는 교회들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복음적인 성도들이 교회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새 신자들이 복음을 바르게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교회들이 당연히 많아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현실은 정상보다는 비정상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갱신된 교회가 더 늘어나면 정상적인 교인들이 정상적인 교회에서 하나님을 정상적으로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갱신된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격려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반딧불이 길의 방향을 비쳐주듯이 소규모의 갱신된 교회 하나가 진리의 길을 갈망하는 다른 여러 교회들에게 신선한 도전과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교회들이 반딧불처럼 여기저기에서 갱신의 불빛을 비춘다면 어두운 교회 현실에 한줄기 소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이러한 역할을 맡을 빛의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결언

본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교회를 통해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고 지금도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끊임없이 내리신다고 믿고 감사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는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하나님과의 생동적인 교제를 통해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는 훌륭한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있습니다.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아무런 지원도 없이 묵묵히 수고하며 헌신한 선구자들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교회가 반드시 갱신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신자의 도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봅니다.

주 예수를 자신의 대속주로 믿고 거듭난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영원한 의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고후 5:10; 롬 14:10). 그 때 우리들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 23) 라는 칭찬을 받을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시고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일들은 모두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세계에서까지 기억되고 하나님의 가슴 속에 언제나 귀한 기쁨으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지 교회 갱신에 참여하여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을 볼 때까지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갱신되어 죽어가는 오늘날의 무력하고 부패한 교회들을 바로잡는 복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리아 위클리 2014.06,11

미주 뉴스 앤조이 201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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