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칭찬 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합니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지, 잘못했다고 야단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로서의 칭찬은 어린아이들에게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물론 칭찬을 하면 잘하고 칭찬을 안 해 주면 해야 할 일을 안 한다면 유치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칭찬은 어른이고 아이고 다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칭찬이 동기부여로 사용되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인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생산과 작업 효과의 최대화를 위해서 성과급이나 보너스를 지급하고 혹은 진급을 시킵니다.

 

성경에는 물론 이런 식의 상업적인 동기부여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온전한 주의 자녀들로 기르기 위해서 칭찬을 동기부여로 사용하신 경우를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칭찬을 좋아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잘했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힘이 나고 다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칭찬을 들으면 더러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심으로는 다 좋아합니다. 칭찬은 다음에 자기가 하는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동기부여의 여러 방법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실례를 통해서 칭찬의 동기부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초대교회에서 가장 말썽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여러 파로 나누어졌고 서로 소송을 걸었으며 성찬을 오용하고 은사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교회 질서를 무시하였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도 행하지 않는 종류의 음행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직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 년 전에 약속한 구제헌금도 질질 끌면서 내지 않았습니다(고후 8:10). 그런데 바울이 이들로 하여금 약속한 구제금을 속히 내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벌을 받는다고 위협하지 않고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첫째, 그는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극심한 가난과 박해 속에서도 풍성한 구제 헌금을 하였다고 알렸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동참하기로 하였는데 시간을 끌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은근히 지적하면서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는 그들이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동기부여입니다.

 

둘째,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진 영적 자원을 열거하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우리들은 상대방이 눈에 들지 않으면 다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나쁜 짓만 하지는 않습니다.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압니다(마 7:11). 고린도 교회는 여러 면에서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그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그들이 언변과 지식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며 부족한 은사가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고 그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낙관하였습니다(고전 1:4-9). 이제 바울은 그들에게 또 다른 서신을 보내면서 동일한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과 말솜씨와 지식과 열심과 사랑이 풍성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포인트는 이 모든 일에 그렇게 풍성하니까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구제 헌금에서도 풍성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말썽만 부리고 잘난 체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돕는 일에 인색하며 신실하지 못하다고 비난했다면 그들에게 아무런 격려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좋은 점들을 지적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실천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게 하였습니다.

 

셋째,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은 고린도 교회의 풍성한 은혜를 증시하는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열성적인 구제금 참여를 언급하는 목적이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랑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고후 8:8). 이것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선례가 고린도 교회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그들의 참여 의식을 높이려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바울은 동일한 문제를 놓고 다시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였습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고후 9: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약속 헌금이 지체되었지만 그들을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일 년 전에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기로 작정하고 헌금하기 시작한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좋은 출발에 대한 칭찬입니다.바울은 아울러 그들의 선한 행위를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자랑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고 알렸습니다. 환난 중에 있던 마게도냐 교회들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자랑을 듣고 크게 분발하여 유대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후한 성금을 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린도 교회가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이제 반대로 그들의 열심에 대한 소식이 고린도 교인들을 분발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고린도 교회를 자랑한 일이 헛되고 바울은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고후 9:2-4).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거듭된 동기부여의 언급들을 보면서 어쩌면 그가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칭찬을 통한 동기부여에 관한 한, 우리들은 사실상 어린아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인내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고 자랑하며 반복해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모습에서 우리들을 여러 모로 격려하며 주님을 잘 섬기게 하려는 하나님의 열성과 인내의 사랑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동기부여는 상업적이거나 유치한 게임이 아니고 자녀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족한 자녀들을 포기하기 보다는 조금이라고 칭찬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시고 윤리적인 호소와 논리적인 설득과 복된 약속들을 동기부여로 삼으시고 우리를 꾸준히 인도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 09년 12월호 ‘양들의 식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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