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동기부여가 가장 많이 주어지는 것은 아마 헌금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압니다.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헌금에 대한 강조가 많은 편입니다. 헌금은 돈이기 때문에 돈이 갖는 위력이 있고 오용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말썽이 되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헌금 때문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못 됩니다. 헌금 중에서도 건축 헌금이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또 아직도 이 문제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금액이 클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의 성도들이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성경의 가르침과 원리에 따라 드려지고 사용되어야 마땅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먼저 우리는 헌금을 위한 성경의 동기부여가 어떤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교회에 헌금을 바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내가 교회 시설을 사용하고 교회의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혹은 목회자들의 사례비를 지급하는 일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재정적인 책임이 있다는 정도의 이유로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헌금은 이러한 일반적인 이유의 수준을 넘어 신학적인 이유와 영적 원리에 뿌리를 둔 행위입니다.

 

1. 헌금은 자신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헌금이라고 하면 현찰이나 수표를 헌금함에 넣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이 헌금의 실제적인 행위이지만 그러한 행위가 품고 있는 뜻은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헌금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바치는 헌신의 외형적 표현에 속합니다. 그런데 왜 자기를 바쳐야 할까요? 그 동기는 예수님의 자기 헌신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바쳐 우리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신자들도 예수님의 새로운 삶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위한 일에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이러한 헌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한 표현이 헌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아낌 없이 자원하여 바쳤기 때문에 그의 모범을 따르는 신자들의 헌금도 순수한 동기와 목적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헌금은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고후 9:7).

이것은 헌금이 어떤 형태로든지 강요나 압력이나 무리한 요구에 의해서 집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헌금은 십자가의 사랑을 감사하고 본받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삶이 주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합니다. 신약에서 이 부분을 가장 잘 지적한 본문은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입니다. 바울은 헌금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바울의 포인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주님이시지만 인간의 생명을 취하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가난하고 낮은 자로서 십자가에까지 순종하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주님의 손에 넘겨 드려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요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누구시며 이 세상과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확실히 믿지 못하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시사입니다. 만일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눅12:47).

 

2. 헌금은 생명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헌금과 생명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볼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구태여 생각해본다면 헌금으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양식이 없는 극빈자들에게 주는 자선 헌금은 생명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헌금이 생명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대한 교훈을 주면서 경건 훈련을 하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딤전 4:8)해 준다고 했습니다. 신자들이 받는 생명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생명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부패하고 한시적인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영원한 새 생명입니다. 새 생명의 특징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새 생명을 받아 누림으로써 그리스도를 닮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참 자아입니다. 이 새로운 자아는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예수님의 패턴을 따라서 살 때에 새 생명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헌금 행위는 새 생명의 열매를 보여 주고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헌금의 혜택을 입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자기 희생의 결과로 오는 새 생명의 터치를 받고, 주는 자도 예수님의 헌신의 삶을 재현하게 됨으로써 자신 속에서 주님의 생명이 흘러나가는 것을 체험합니다. 즉, 주께서 부유한 자로서 가난하게 되시고, 이웃을 위해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충만한 부요를 누리게 되셨듯이, 주는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통로가 됨으로써 예수님의 생명을 세상에 실질적인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3. 헌금은 생명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생명’의 의미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목숨으로 이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속한 영생의 의미로 이해하면 “금생과 내생에 약속”(딤전 4:8)에 대한 내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한 번 받고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내세 천국으로 생각하거나 현세에서의 일상적인 삶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롬 6:4)하게 하는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구원을 받은 후에 이 세상에서 사는 대로 살다가 죽으면 영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새 생명입니다.이 생명은 예수님의 생활 방식과 교훈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시각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새 삶의  모습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에서 밝혀집니다. 이러한 자기 헌신의  한 표현이 헌금입니다. 주는 삶은 나의 자원을 내어 주는 것이며 내가 가난해지고 남이 부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삶은 다시 새 삶의 원리에 따라 부요와 충만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 마게도냐 교인들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 희생적이고 후한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자기 희생의 삶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인들을 부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께서 자신은 가난하게 되시고 다른 이들은  부하게 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과 사역을 전적으로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 희생의 모델 위에 세우고 고린도 교인들도 그렇게 살기를 갈망하였습니다(고후 8:1-7).

바울은 경건한 삶에는 현세와 내세에서 생명의 약속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새 생명의 길을 따라 사는 삶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영생의 체험이 약속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새 생명을 현 세상에서부터 살도록 격려하는 동기부여입니다. 야고보는 참 경건은 고와와 과부를 도와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1:27). 이런 경건과 나눔의 삶은 하나님의 생명을 그리스도의 삶의 패턴에 따라 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누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생동하며 본연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 바울은 헌금을 독려하는 동기부여로서 광야 세대에게 내린 만나를 예시로 들었습니다(고후 8:15; 출 16:18).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만나는 약속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마다 날마다 먹고 다음 여행을 위해 필요한 힘을 얻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광야에서 물질적으로 넘치게 산 것은 아니었지만 가나안으로 가는 여행 길에서 굶어서 죽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본향에 이를 때까지 충분히 새 생명의 삶을 실천하면서 누릴 수 있도록 섭리하십니다.

바울의 포인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한 백성을 인생의 광야 길에서 굶어 죽게 하시지 않을 테니까 주님의 공급을 신뢰하고 마게도냐 성도들의 모범을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게도냐 교인들처럼 비록 물질이 남아돌아 갈 정도는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을 함께 돕고 새 생명을 전달하며 이를 누리는 일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과 9절에는 매우 커다란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즐겨 드리면 주님을 섬기는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풍성한 공급을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헌금 이야기를 하면서 유업론에 근거한 영적 원리를 제시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세와 내세에 대한 풍성한 새 생명의 약속을 동기부여로 준 것이었습니다.

– 09년 11월호 ‘양들의 식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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