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9:22~23, 이스라엘을 속인 기브온 족속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여호수아 9:22-23). 

기브온 족속과의 조약은 현실적인 면에서 쌍방이 실리를 추구한 것처럼 보입니다. 기브온 족속의 편에서는 이스라엘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이스라엘 편에서는 비록 속임을 당해서 맺은 조약이지만 손해 될 것이 없었습니다. 제단을 위해서 필요한 일꾼들을 이방 노동력으로 대치하고 공짜로 자자손손 부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굉장한 이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입니까? 본 에피소드를 놓고 흔히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에게 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모두 처단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제 우상 숭배자들이 여호와의 언약 공동체에 버젓이 들어와 살게 되었으니 어찌 그들의 악한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로 개종한 것이 아니고 당장 죽음에서 피하기 위한 임시 조치로 조약을 맺고 종살이를 자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해석은 맞는 것일까요? 기브온 족속들을 실리적 기회주의자들로 보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라는 보다 큰 그림 안에서 볼 때 너무 부정적인 해석입니다. 우선 기브온 사람들은 마음에 없는 조약을 마지못해 맺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화친을 먼저 청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종속되어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과 요단 동편에서 행한 군사적 정복과 여리고 및 아이 성의 멸망에 대해서 듣고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대와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 앞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들었을 때 그분이 참 신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9:24-25). 

이 점에서 그들은 라합이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해서 가졌던 확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비교. 수 2:9-11). 기브온 사절단이 여호와께서 애굽의 바로 왕을 치시고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의 아모리(가나안) 왕들을 죽인 소문을 들었다고 한 것은 공치사(空致辭)가 아니고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겠다는 암묵적인 자청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이스라엘이 그들을 살려 주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였다(수 9:24-25). 그리고 그들은 원수들을 이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도 고백하였다. 이로써 기브온은 이스라엘의 종으로서의 종속국의 신분을 받아들였다.”(R.S. Hess. TOTC 주석 P. 181). 

한편,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맹세의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를 취소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기만책에 대한 책임을 묻고 벌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주를 받아 대대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중노동을 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23절). 이것은 저주의 처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여호수아 자신도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내린 저주의 내용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좋은 선물이 가장 험한 포장으로 전달된 셈이었습니다. 

기브온 족속의 저주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수 9:23, 27).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저주했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느 13:2)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좋은 뉴스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면에서 기브온 주민들에게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었을까요? 

첫째, 기브온 백성은 신령한 소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23절)가 되었습니다.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은 힘든 노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27절) 행하는 일이었기에 신령한 사역이었습니다. 저주가 변하여 복이 된 것입니다. 

둘째, 기브온 백성은 바알의 제단에서 여호와의 제단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성막 안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바알 우상을 섬길 수 없었고, 그 대신 여호와 종교에 참여하는 합법적인 위치에 놓였습니다. 그들은 레위인들을 도우면서 성막의 희생 제사가 지닌 속죄와 구원의 의미를 날마다 배우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언의 한 전례로서 선교적인 의미를 지닙니다(창 12:3). 

셋째, 하나님께서 기브온 족속을 보호하기 위해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 10:12).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이끄는 가나안 연합군이 기브온을 공격하려고 대진하였습니다. 황급해진 기브온 족속의 원군 요청을 받은 여호수아는 전군을 동원하여 기브온에 가서 가나안 연합군을 섬멸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큰 우박 덩이를 도주하는 적군들에게 퍼부으셨습니다(수 10:11). 그리고 여호수아가 나머지 대적들을 소탕하도록 시간을 충분히 늘리기 위해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저주를 받았던 기브온 족속이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실수나 실책까지도 합력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자원이 되게 하십니다(롬 8:28). 

넷째, 기브온 족속이 살았던 땅에 성막이 안치되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이 끝난 후에도 기브온 족속은 계속해서 성막 봉사를 하였고 성막과 번제단이 기브온 성읍에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을 속이고 동맹 조약을 맺은 이방 민족의 성읍인 기브온에 여호와의 성막과 제단이 세워진 것은 놀라운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형벌을 선으로 갚아 주셨습니다(참조. 삼하 16:12). 

우리의 죄와 불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번 크게 실족하면 다시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초범은 재범의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흰 개 꼬리를 삼 년 동안 땅에 묻었다가 다시 파보니 여전히 희더라는 말도 있습니다. 악습은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은 성막 봉사를 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통해 죄가 용서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레위 지파를 도우면서 성막에 대한 율법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종교에 비해서 가나안의 바알 종교가 얼마나 부패한 것인지를 깨닫고 완전히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때 속임수를 썼던 기브온 족속들을 거룩한 성막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죄를 씻게 하시고 언약 백성의 무리 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시오. 크리스천의 교제가 있는 곳으로 불신자들을 초대하십시오. 복음의 소리에 귀가 뜨이고 눈이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브온 족속이 성전에서 제사 사역을 돕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믿게 되었듯이 불신자들도 복음과의 접촉 속에서 회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초범자는 재범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로 돌아가면 죄가 용서되고 새 삶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기브온 족속은 성막 봉사로 인해서 하나님과 항상 가까운 교제를 즐겼고 날마다 영적 사역에 종사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들은 전국에 퍼져서 이스라엘의 각 가정을 섬기는 종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27절)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특정한 사역을 맡은 무리였습니다. 이들을 특권층이라고는 부를 수 없겠지만 언약 백성을 속여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게끔 유인했던 전과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후한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제단을 위해서 기브온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기브온 족속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에 속임수를 썼던 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죄의 결과는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영구적입니다. 9장 마지막 절은 기브온 족속이 여호와의 제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오늘까지 이르니라”(27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꿉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우리들이 지은 죄와 실수를 주권적으로 섭리하셔서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은 복잡하게 이리저리 얽혀서 돌아갑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이 여러 가지 실수도 하고 억울한 일도 당하며 원치 않는 일에 관련되기도 합니다. 후회되는 일도 있고 다시 잘 하고 싶은 일들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당시에는 옳고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속임을 당한 일들도 있습니다. 혹은 나 자신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때로는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 생활에는 성공과 실패가 뒤섞이고 영적 전진과 후퇴가 엇갈립니다. 그럴 때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실수와 불의와 불행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다함 없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재앙과 해악을 선과 복으로 돌이키고(창 50:20; 렘 32:42), 저주를 선과 복으로 바꾸며(신 23:5; 느 13:2; 삼하 16:12),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시 30:11)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진술합니다. 신약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증언하였습니다(롬 8:28). 

여호와 하나님은 「화가 복이 될 때까지」 역사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여호수아의 하나님이시며, 기브온 족속의 하나님이시며, 주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2014. 05.14  플로리다 코리아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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