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3장 1절 

▲ 이중수 목사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여호수아 13장 1절). 

여호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 중에서 이렇게 섭섭한 말씀이 없었을 듯합니다. 나이가 많아 늙었으니 이제 너는 다 끝났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앞으로도 더 차지해야 할 땅이 많아 남았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맥이 빠지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무시하거나 기를 죽이시려고 늙었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이것은 여호수아에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 늙었다고 처지지 말고 분발하라는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실상 여호수아는 그 이후로도 오래 살았고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당시에 아마 갈렙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입니다. 갈렙은 그 때 85세였는데 여호수아는 110세까지 살았습니다(수 14:10; 23:1; 24:19). 

이렇게 보면 여호수아는 25년을 더 산 셈입니다. 여호수아의 수명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여호수아를 보시고 나이가 많다고 하신 것은 이제 일을 더 이상 못하는 노령이 됐으니까 은퇴하라는 뜻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남은 일을 미루지 말고 속히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늙었지만 아직 차지할 땅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 전처럼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서 남은 땅을 다 정복하라고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한 사람에 의해서 완취될 수 없습니다. 다음 사람 혹은 다음 세대에게 남은 일을 넘겨 주어야 합니다. 

탁월한 사람이 빠지는 유혹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힘이 남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도맡아서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과욕은 활동적인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유혹입니다. 특히 우리들은 상하 관계를 늘 따지고 지도자의 일방적인 지시로 통제를 받는 문화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팀 사역이 쉽지 않습니다. 

팀웍(Team work)이 잘 돌아가면 훨씬 능률적이라는 것은 일반 비즈니스에서도 실증되고 있습니다. 서구 기업체의 신입 사원 채용 방법을 보니까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고 협력할 수 있는 성격과 소양을 가졌는지를 많이 테스트하였습니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거나 남들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록 개인적으로 탁월할지라도 전체에 유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할 일을 주시되 이제는 일선에 나서서 뛸 것이 아니고 앉아서 일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게 유업의 땅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사실 이 일도 여호수아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제사장 엘르아살과 각 지파의 족장들이 함께 분배하였습니다(14:1).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게 소유지를 분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소유지만이 아니고 각 개인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여해야 하는 소명의 영역에도 분배의 선을 그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변경까지 인도하게 하셨고 그 다음에 있을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가 맡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셨으며, 제자들은 교회를 세워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복음을 다 전하시지 않았고, 사도들이 세계 복음화를 다 마친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에서도 어떤 팀이 고고학적 발굴을 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다 파헤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차 세대가 더 발전된 방법으로 발굴할 수 있는 여분을 남겨 두고 그들이 실제로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고고학 전체에 유익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맡은 소명이라도 때가 되면 방향을 바꾸거나 측면 사역을 하거나 혹은 작은 일이라도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더 계속하느냐 깨끗이 물러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물러났어도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에 큰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로 목사가 은퇴한 후에도 자신의 추종 세력들을 통해 교회를 통제하려고 하는 일은 우리나라 교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런가 하면 매우 건전한 방법으로 은퇴 이후에도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교회 부목사로 섦기는 학장님 

제가 런던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 학장이 은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보려고 어떤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그 학장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웬일이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그날 설교를 하시는가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아주 작은 편이라 그처럼 유명하고 바쁘신 분을 불렀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교회의 부목사로 섬긴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놀라워하니까 이 교회 목사가 자기 제자였는데 소아마비라 심방하기가 불편해서 자기가 자원하여 대신 심방과 상담을 해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저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고 또 수용되는 교회 문화가 참 부러웠습니다. 

은퇴를 해도 낮은 위치에서 주님을 계속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은퇴한 목사들의 불평 중의 하나는 자기를 불러주는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 부탁을 바라는 말입니다. 아마 교회에 일손이 부족하니까 부엌이나 화장실 청소 좀 도와 달라고 한다면 사람을 모욕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론 목사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우리 문화도 아닙니다만 문화든 관습이든 다른 무엇이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면 누구나 가치관이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기독교 가치관이 우리들의 비성경적인 관습적 가치관을 극복하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라도 일선에서 물러섰으면 다른 일꾼들을 돕거나 경험과 지혜를 살려 자문이 되거나 차선에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기고 간섭을 하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세력을 앉혀 놓으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불필요한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이런 일들은 선후배 따지고 이해관계 챙기는 일반 세상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서로 주고받고 밀어주고 넣어주고 특혜를 주는 일들은 교회에서는 당치 않습니다. 

스콜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에 가면 살롯 침례교회가 있습니다. 옛날에 유명한 윌리엄 스크로기(William Scroggie) 목사와 케직 사경회의 강해 설교자였던 알란 레드파스(Alan Redpath) 목사님이 시무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담임을 맡은 목사님이 저와 친분이 있었는데 일찍 은퇴를 하였습니다. 제가 물었더니 큰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너무 오래 강단을 잡고 있으면 후임을 구하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금까지 목회를 하지 않고 저술과 강사로 활동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교회 목사는 반드시 조기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르익은 분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지 오래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인생의 여러 경험과 하나님과의 긴 교제와 장기간의 말씀 사역을 통해 얻게 된 영성의 보화들을 교회가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다면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늙은 여호수아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 

사실상 신약의 사도들이 은퇴를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일했습니다. 현대교회처럼 교단에서 은퇴 연령을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도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필요에 따라 타당하고 지혜로운 조치일수도 있고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유연한 적용이 어려운 약점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경우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고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돌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어야 합니다. 디모데처럼 주니어(junior)라고 얕보아서도 안 되고(딤전 4:12), 시니어(senior)라고 특권을 누리게 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교인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자들의 일을 보고 그들의 수고가 인정되면 가장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살전 5:12-13). 바울은 그의 충실한 동역자였던 에바브로디도를 교회가 귀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빌 2:25-30). 신실한 일꾼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젊었느냐 늙었느냐가 잣대가 아닙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일꾼에 대한 지침은 언제나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수고하는 성숙한 자들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골 1:7; 딤전 4:13-16; 5:17; 딤후 2:15, 24, 25). 

여호수아는 직접 전쟁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땅을 분배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전방에서 후방으로 물러났어도 후방 사역이 전방 사역 못지 않게 중요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전방과 후방이 다 협력할 수 있어야 여호와의 군대가 강성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이를 먹거나 은퇴를 하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일은 끝났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녕 할 일이 없으면 교회에 와서 혹은 집에서 중보 기도라도 전념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나이 먹었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크든지 작든지 찾아서 해야 합니다. 

제가 과거에 일했던 어떤 선교회에 아시아 지역 전체를 책임 맡은 회장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직원들 책상을 닦아놓고 화장실 청소부터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영국 선교사였는데 지금 미국의 한 국제 선교 단체의 총책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주님을 어떤 형태로든지 신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이 끝날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충성과 신실로 끝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젊었을 때에도 소명을 주셨고 늙었을 때에도 소명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첫 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수 1:2)고 하셨습니다. 그 후 긴 세월이 지난 후에 여호수아가 늙었을 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유업이 되게 하라”(수 13:7). 

스웨덴의 유명한 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늙은 삶을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고 텔레비전 기자가 물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요. 올라갈수록 숨이 가쁘답니다. 그러나 오를수록 전망이 더욱 넓어져서 좋아요!.” 

주님이 주신 소명은 환경이나 나이나 배경이나 관습 등에 제한을 받지 말고 계속해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소명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주를 끝까지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부름의 상을 향해 꾸준히 올라갈수록 우리들의 전망도 더욱 넓혀질 것입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편 92:14).

2014. 04. 23 플로리다 코리아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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