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강해(32)

엘리사의 죽음(왕하 13:18-21)

[엘리사의 죽음과 부활]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열왕기하 13:20-21).

유대인들의 새해는 양력으로 지금의 3, 4월 경입니다. 이 때는 팔레스타인에서 겨울 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모압의 약탈꾼들이 요단 강 근처의 추수 밭으로 연례 행사처럼 출몰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처럼 보이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사의 묘실 근처에 죽은 사람을 장례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모압의 도적 떼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 안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13:20-21)고 했습니다.   본문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이상한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상식이나 과학적인 범주 내에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체험적 인식이나 과학적 데이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과학적 증거를 댈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 발생한 일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게는 열려진 곳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자신의 피조계에 들어오셔서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포함하여 질병과 죽음과 악령들을 통제하시는 주권자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적들이 지닌 구체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기적 자체에 쏠리면 자칫 미신이 됩니다. 중세기 가톨릭 교회는 소위 ‘성자’라는 사람들의 유물이나 유해를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오래 된 사원에 가보면 대체로 ‘성자’의 유품들을 포함하여 신체의 일부에 해당하는 뼈를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유골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여러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자의 혈루증이 치유되었고(막 5:24-34), 베드로의 그림자나 바울의 앞치마가 치유와 축귀에 사용되었습니다(행 5:12-16; 19:12). 물론 그러한 물질 자체에 어떤 본유적인 치유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이 언급되었을 경우에는 기적의 현상 자체에 붙잡히지 말고 문맥 속에서 보다 깊은 영적 의미를 붙잡도록 해야 합니다.

기적은 행동으로 된 일종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을 ‘표적’(sign)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이러한 영적 교훈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맹인의 치유는 단순히 환자의 시력 회복이 아니고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요 8:12; 9:5-7). 오병이어의 기적도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가리킵니다(막 8:19-21; 요 6:26-51). 나병이나 중풍병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기적은 인간의 죄와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을 예시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마 11:2-5). 엘리사의 경우에도 그의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임을 증시합니다.

그럼 죽은 자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을 때 소생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일차적으로 엘리사의 사역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우상 숭배에 빠져 마치 시체와 같이 된 이스라엘을 회생시키기 위해 사역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뼈에 닿았을 때 죽은 자의 시체가 살아난 것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죽음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조만간 앗수르와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치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듯이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접촉된다면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즉, 에스겔이 예언한 것처럼(겔 37:1-14) 골짜기의 무수한 마른 뼈들이 살아나게 되어 죽음의 포로 생활에서 다시 귀환하는 회생을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본 사건은 궁극적으로 영적 회생과 육체적 부활에 대한 매우 드라마틱한 예시입니다. 성도의 부활 때에는 다시는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가 없고 죽음 자체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들이 모두 부활 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주검에 접촉된 시체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부활 생명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 예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영적으로 회생되거나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은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보고 접근을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뼈는 생명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 시대를 넘어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의한 새 생명의 길을 시사합니다(갈 3:13). 한편, 본 기적은 엘리사 시대의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들도 있습니다.

첫째, 엘리사가 죽었기 때문에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사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활동이 끊어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가 소생했다는 것은 엘리사의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엘리사의 뼈 자체에서 부활 생명이 공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뼈는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물적 증거입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왕하 13:14)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죽었고 그의 뼈는 묘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갱신하기 위해 활약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의 마른 뼈가 다른 죽은 시체에게 부활 생명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진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병거와 마병에 해당하는 엘리사를 잃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생명이 끊어져 있었고 모압과 같은 외적의 침입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엘리사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상숭배에서 돌이킨다면 새생명을 받고 회복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시체와 다름없는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영적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자신을 일치시키면 우리들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대속의 형벌을 받으신 것을 믿으면 즉시 내 영혼이 회생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갈 3:11). 주 예수의 죽음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눈에 나는 영적으로 회생된 의로운 자로 비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 넘어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요 7:38).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언약 백성이었지만 부활 생명의 원천에서 떠나 우상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영적 활기를 잃고 죽어갔습니다. 엘리사의 죽은 뼈에 대한 기적은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라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둘째, 엘리사의 사역은 사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뼈는 생명을 일으켰습니다. 죽은 자들이 오히려 살아 있는 자들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아벨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고 하였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불의한 가인으로부터 살해를 당했지만 그가 흘린 의인의 피는 헛되지 않아 훌륭한 믿음의 모범으로서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열들은 그들의 사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믿음 생활의 능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뼈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뼈에 닿으면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준 교훈과 그들의 삶을 따를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주시려고 했던 영적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었으나 그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말씀을 전합니다. 그들은 죽었어도 계속해서 호흡하며 후세대를 향해 영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후에 어떤 영향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터치가 있으면 시들은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새 생명의 통로입니다. 주 예수를 구주 하나님으로 믿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살면 사후에도 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분의 부활 생명을 증거했던 자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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