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강해 (5)

오는 세대의 실체를 보고 살라

열왕기하 2:8-14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 1:11)

엘리사가 본 것은 모두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수레와 불말들과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는 이 세상에 속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기적들은 단순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들에는 귀중한 영적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엘리사가 목격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오는 세대’의 실체들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들이 사는 ‘이 세대’(롬 12:2; 고전 2:8)는 땅에 속한 ‘악한 세대’(갈 1:4)입니다. 악한 세대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인류의 타락한 삶을 지칭합니다. ‘이 세대’는 죄의 세상이기에 부패와 죽음의 먼지가 날마다  쌓이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바라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눈을 돌려 주 예수를 바라보고 복음을 믿으라고 호소합니다. 인류의 소망은 영원하고 썩지 않는 하늘에 속한 ‘오는 세대’(엡 1:21)의 실체를 보고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다. 엘리사가 본 불수레와 불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로써 성취하실  ‘오는 세대’의 영광을 시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와 가르침은 이 세상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오는 세대’의 실체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살아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오는 세대’의 영광을 보고 영원한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살 길도 하나님의 ‘오는 세대’의 실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없이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도 ‘오는 세대’의 실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따르는 ‘이 시대’의 현상에만 시선이 갔다면 두려워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엘리사는 엘리야가 타고 가는 불수레와 불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승천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오는 세대’의 영광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하늘에 속한 성도들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그러므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이 악한 세대’를 거슬러 하나님을 섬기며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 것은 엘리야의 승천이 계시한 ‘오는 세대’의 영광과 능력이었습니다. 이 세대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광도 능력도 주지 않습니다. 이 세대는 찬란한 하늘의 불수레와 불말들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이 악한 세대는 ‘오는 세대’의 영광 앞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하늘로 들어올린 신령한 회오리 바람의 실존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을 이 부패한 죽음의 세상에서 갈라놓는 하늘의 불수레와 불말들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골 3:1) 곳에서 왔습니다. 엘리야를 죄와 죽음의 ‘이 세대’로부터 들어올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켜 올렸던 신령한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보아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앞으로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주 하나님을 위해서 전적인 헌신으로 사는 삶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그는 능력의 원천을 보았고 신실한 종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의 실체와 엘리야의 하나님을 본 것이었습니다. 이제 엘리사는 자기 주인이 하나님을 그토록 강렬하게 섬길 수 있었던 비결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곧 엘리야가 ‘오는 세대’의 천상적 세계의 실체에 항상 터치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타올랐던 제단의 불과 요단 강을 갈라지게 한 기적의 능력은 ‘오는 세대’에 속한 능력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엘리야가 항상 품고 살았던 하늘의 비전이 그 앞에서 선명하게 나타난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 ‘오는 세대’의 실체를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도 이제부터는 ‘오는 세대’의 비전을 안고 엘리야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비로소 영적 실체에 눈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엘리사가 오랜 테스트를 받고 도착한 목적지였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라고 외치면서 엘리야의 겉옷으로 강물을 쳤습니다. 강물은 엘리야가 처음 물을 쳤을 때처럼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하나님은 엘리사의 하나님이 된 것이었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은 엘리사의 겉옷이 되었고 그는 명실공히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죽음의 강을 이기고 건너갔습니다. 이로써 엘리사의 위대한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의 실체를 응시한 자에게 엘리야의 겉옷이 떨어집니다].

엘리야는 순식간에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런 승천은 ‘오는 세대’의 찬란한 영광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가슴에 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12절).

큰 인물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더욱 그 존재가 뚜렷해집니다. 엘리야는 과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에 속한 자로서 바알 종교에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달렸던 용맹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습니다. 물론 이 외침에는 위대한 스승을 잃는 엘리사의 개인적인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오는 세대’의 현란한 실체를 본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늘에 속한 실체에 부딪힌 자들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킵니다. 세상과 자신을 보는 관점에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성품이 성숙됩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을 떠난 엘리야에 대한 국가적인 손실과 개인적인 슬픔에 젖어 어깨가 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잡아 둘로 찢었습니다. 이것은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의 큰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이제 하늘에 속한 ‘오는 세대’의 실체를 본 사람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슬픔의 표현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속한 이 세대의 옷을 찢고 하늘에 속한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13절).

엘리야는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겉옷은 엘리사 앞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부탁했던 갑절의 성령에 대한 응답을 가시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물적인 증거였습니다. 엘리야는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때가 되면 우리 곁을 떠납니다. 아브라함도 떠났고 모세도 떠났고 사무엘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존경하는 이 시대의 엘리야들도 떠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참 병거와 마병은 주님이십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그는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님도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내주를 받는 것과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는 것은 별개의 영역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성령의 내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크리스천들이 빠짐없이 누구나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의 능력의 겉옷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늘의 실체를 응시하는 자에게만 떨어집니다. 이것이 엘리사와 다른 선지자 수련생들과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늘의 실체를 바라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덧없는 허상에 불과한 ‘이 악한 세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살되 하늘의 실체에 비추어 삽니다. 그들은 항상 위의 것을 찾으며 삽니다(골 3:1). 그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를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뢰하며 삽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그가 엘리사의 떨어진 겉옷을 붙잡았을 때에는 엘리야의 유품을 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겉옷이 상징하는 성령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겉옷이 자기가 원했던 곱절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통로가 될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겉옷이 하늘에서 떨어진 은혜의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너온 요단 강의 물을 엘리야의 겉옷으로 다시 가르고 마른 강바닥으로 건너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늘의 실체를 본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제 엘리사는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봉사할 수 있는 담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아마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능력의 종이 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승천에서 ‘오는 세대’의 영광을 엘리사가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밝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 예수를 묵상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응시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엘리야도 엘리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주셨던 ‘오는 세대’의 능력과 영광을 곱절이나 더 우리들에게 입혀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는 세대’의 비전과 실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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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위클리 20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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