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미국에 살면 추수감사절이 큰 명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 Thanksgiving Day 인데 대개 일요일까지 쉽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처럼 추수감사절도 세속화되었지만 원래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 종교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인간의 큰 약점의 하나는 받은 은혜를 잘 잊는 것입니다. 잊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베푼 자에게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형성된 서구 사회에서 생활해 보면 ‘감사 문화’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극히 작은 것을 놓고도 감사하다는 말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물 한 잔을 남편에게 가져다 주어도 생큐(Thank you) 라고 하고 심지어 내 돈 주고 물건을 사면서도 반드시 ‘생큐’ 라고 말합니다. 내가 물건을 팔아 주었으니까 당연히 내가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의 서비스를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이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기독교는 감사 문화를 일으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대속의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의 사례들을 줄줄이 열거하고 잊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 문화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되었음에도 하나님의 은택을 자주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거듭해서 말했습니다(참조. 시편 103-107, 136편).

 

우리들은 과거의 구원도 늘 마음에 담아 두고 감사해야 하지만 오늘 현재 받고 있는 평범하고 작은 은혜까지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광야 세대의 가장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날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증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거역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사십 년간 아무도 광야에서 굶어 죽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날마다 감사할 수 있는 은혜의 만나들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가 조악한 음식이라고 싫어하였습니다. 사실은 만나가 조악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이 조악하였습니다. 만나는 광야 생활에서 필요한 최고의 건강 식품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기적의 음식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어떤 세대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날마다 먹고 40년을 산 자들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광야 세대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날마다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건강보다 입맛이 더 중요하였고 감사보다는 불평이 더 몸에 배여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받는 일용할 양식은 내 입맛에 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신령한 손으로 빚어낸 양식이라면 감사해야 합니다. ‘만나’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의 표시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는 큰 것에도 당연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큰 것만 감사하면 감사의 소재가 부족합니다. 항상 감사하려면 날마다 내리는 만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보잘것없는 오병이어를 쥐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작은 만나를 놓고 깊이 감사하면 우리들이 주님의 마음을 닮았다고 기뻐하십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불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은 은혜들을 업신여기고 감사하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합니다. 만나를 감사할 수 없었던 광야 세대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만나가 조악하다고 불평하며 감사하지 않던 광야 백성들은 모두 조악한 땅에서 조악한 마음을 품고 조악하게 죽었습니다!

 

어떤 역경에서도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고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덧붙였습니다. 본 절의 “이것”은 단수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일 한 가지만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볼 때에 앞 부분에서 언급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도(살전 5:16-17) 모두 하나님의 뜻에 포함됩니다. 기쁨과 기도가 모든 성도의 특징이어야 하듯이 감사도 항상 넘쳐야 합니다(골 2:7; 3:15, 17; 엡 5:4, 20). 감사하는 일이 하나님이 정하신 선한 뜻이라면 우리들이 일년에 한번씩 추수감사절을 절기로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의 의미를 잘 알고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실천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무엇을 놓고 항상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기 일이 잘 될 때에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감사의 영역과 대상이 제한됩니다. 나에게 크고 좋은 일이 항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항상 집안에 경사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질병에서 낫는 것도 아니고 항상 자식들이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듯이 좋은 일에도 흉한 일이 따르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크고 좋은 일이라고 해도 대부분 일생 동안 손가락으로 헤라릴 정도입니다. 내 일이 잘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의 일단계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비록 내 일이 잘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이 잘 될 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감사하는 일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모범을 닮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잣대로 본다면 예수님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바울도 자기 일이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당하셨고 갖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바울은 너무도 심한 고난을  당하여서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시려고 사형선고를 내린 것 같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고후 1:8-9). 그럼에도 그는 감사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성경적인 감사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신구약에 나오는 감사의 내용은 몇 가지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시편 136편에는 감사의 소재가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등장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최고성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신 분입니다(2-3절). 둘째,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4-9절). 셋째, 출애굽의 구원입니다(10-16절). 넷째, 가나안 정복의 승리입니다(17-22절). 다섯째, 최근의 역경과 위험에서 받은 구출입니다(23-24절). 여섯째, 만민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입니다(25-26절)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본 시에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는 후렴이 매 절마다 붙어 나옵니다. 우리들의 시점에서 보면 본 시의 감사 내용은 모두 과거지사입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에게 변함 없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의 성품이 하나님의 모든 선한 구원 행위의 밑바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같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신뢰하며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평소에 교리적인 내용의 감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에 대한 교리적 내용이 감사의 주된 주제로 나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도 감사의 여러 내용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침체될 수 밖에 없는 거듭된 곤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자주 언급한 감사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고 다른 성도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로마교인들의 믿음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였고(롬 1:8), 고린도교회는 구원의 지식과 풍족한 은사와 그들의 재림 신앙을  감사했습니다(고전 1:4-7). 에베소교회와 골로새교회에 대해서는 그들의 믿음과 성도들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엡 1:15-16; 골 1:3-4). 빌립보교회에 대해서도 바울은 항상 감사하였는데 그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했기 때문이었습니다(빌 1:3-5). 데살로니가교회는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받고 우상을 버렸으며 믿음과 사랑이 자라서 믿는 자의 본이 되었으므로 감사하였습니다(살전 1:2-10; 살후 1:3-4).

 

바울은 항상 다른 성도들의 영적 삶에 대해서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의 감사 기도 중에는 우리들의 경우처럼 먹고 사는 문제와 자기 신변 위주로 일이 잘 되는 것에 대한 감사를 언급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감사거리가 못되어서가 아니라 감사의 우선 순위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바울의 주된 감사 내용은 자신의 복지도 아니고 성도들의 생활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영적 안녕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감사의 첫 순위를 성경의 실례에 따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에 대한 교리적인 내용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의 진리를 잘 깨달아야 하고 복음으로 거듭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과 자세가 복음에 의해 변화되어야 하고 삶의 방식에 있어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습관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무엇이 정말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고 어떤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인지를 반성하고 복음을 실생활에서 적용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감사 기도에서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빌 1:3; 골 1:3; 살전 1:2)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성도로 하여금 나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의식 중에 끼치는 선한 영향입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 주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감사하는 자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극히 작은 것으로도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손에 잡고 하늘을 향해 감사하셨듯이, 나의 삶에서 거두어들인 은혜의 조각들을 나의 오병이어로 삼고 하늘에 계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주님의 축도로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양식으로 불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내가 행하는 모든 선행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갚으십니다. 주님은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0:42). 어떤 상일까요? 하나님의 칭찬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 상은 곧 ‘하나님의 감사’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감사하신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감사를 받으실 뿐만 아니라 감사를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감사를 하신단 말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봉사를 받으셔도 감사할 의무가 없습니다. 종이 마땅히 주인을 섬긴 것인데 주인이 감사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9-10).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종 이상으로 대하십니다. 자신을 종의 위치에 두는 것은 우리 편의 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종이 아닌 자식으로 대하십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부모는 자녀들의 효성에 쉽게 감동을 받습니다.

어느 날 병든 종의 치유를 원했던 한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직접 오실 필요가 없으니 그냥 명령만 하시면 자기 종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전달받은 예수님은 크게 놀라워하시면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눅 7: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큰 감동을 받으시고 병든 종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가나안 여자의 믿음도 예수님을 놀라게 하였습니다(마 15:28). 그녀는 자신이 이방인이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막 15:27-28). 주님은 이 가나안 여자의 간절한 믿음에 크게 감복되셨습니다. 주님은 큰 감동을 받으셨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지극히 부족하고 작은 존재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항상 선을 택하고 항상 기도하고 매사에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이처럼 놀라운 복을 체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사하면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나에게 감사하는 사람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편해지며 가까워집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랑의 관계에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감동을 안겨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크고 작은 여러 일을 날마다 감사하고 감격해 보십시오. 감사를 모르는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깊지 않고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는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의 마음이 넘치지 않는 자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는 삶을 살면 행복합니다. 주님은 항상 선을 택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기뻐하는 삶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고난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인생살이의 고통이 있고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가 있으며 가슴을 아프게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않는 감사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위해 나아갑니까? 우리는 물론 하늘 아버지께 우리들의 필요를 알리고 그분의 돌보심을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효자는 자신의 필요보다 부모를 더 생각하는 법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희생과 사랑을 자식이 깨닫고 언급할 때에 부모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 때에 부모는 자식을 대견히 여기고 자식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느끼십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구원을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의 여러 은혜들을 찬양하면 주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깊이 감사하십니다. 우리들의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감사까지 받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주님과의 관계에서 감사와 기도와 선행의 삶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우리들은 주 여호와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깊이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루 동안에 그다지 크고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평범한 하루 속에서 극히 작은 감사의 소재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그것은 경건과 겸비의 행위입니다.

작은 감사로 주님을 쉽게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도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심히 부족하여도 주님께 감동을 일으켜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기뻐하십시오. 나의 감사로 인해서 주님의 하루가 감격의 하루가 되게 하십시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주님은 쉽게 감동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로부터 감사의 추수를 거두시고 기뻐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생큐”(Thank you!)의 상을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추수감사절이 매해 한 번의 행사로 끝나게 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감사’를 받는 추수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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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코리아 위클리

11.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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