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은 최근에 인기를 모은 그의 ‘야베스의기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말했습니다.

“이 청원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는 것과 내가 그의 능력으로 날마다 경험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변화시켰다. 사실상, 이 진리를 적용하는 수천 명의 신자들이 정규적으로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그럼 야베스는 과연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야베스의 기도는 역대상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유다 지파의 족장들이 소개되는데 그중에 야베스라는 사람의 이름이나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단 두절인데 일종의 프로파일입니다. 족보에서 짤막하게 프로파일을 넣는 것은  라멕과  리므롯의 경우처럼 고대 족보 작성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창 4:19-24; 10:8-12). 야베스는 라멕이 나리므롯처럼 어떤 행위로 유명한 것이 아니고 그의 짧은 기도로 유명합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그런데 이 짧은 기도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내용을 보면 다른 기도들에 비해서 순전히 자기 중심적인 기도같은데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대상 4:10)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한마디로 자기가 원하는 복을 달라고 청해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름과 뜻을 먼저 생각하라거나 혹은 자기 중심의 기도를 버리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또한 응답을 해 주시면 그 대가로 기도자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해 드리겠다는 서원이나 약속도 없습니다. 그저 내지역이 넓혀져서 형통하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게 해 달라는 기도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귀에 매우 좋게 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우리는 야베스의 기도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1. 야베스는 땅을 더 넓혀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것은 자기 땅을 더 달라는 청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만약 야베스가 재산을 늘리고 싶어서 땅을 더 달라고 기도했다면 문제가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각지파에 따라 기업의 땅으로 할당된 영역이 있었습니다(민 26:52-56). 그래서 할당받은 땅은 대대로 자기 가족에게 전수되어야 했으며 가난으로 부득이하여 땅을 팔았을 경우에도 50년이 되면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레 25:10). 이러한 이스라엘의 토지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야베스가 지경을 넓혀 달라고 청한 것은 부자가 되려고 땅을 더 배정받기를 원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땅의 배정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이미 다 끝난 일이었습니다

2. 야베스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간청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정확하게 그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무엇을  간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대상 4:9).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결코 존경을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자신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한 것은 율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재산을 더 늘려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했으니까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의뜻에 맞는 어떤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지경이 넓혀지는 문제는 야베스가 겪는 환난과 근심에서 벗어나는 일과 관계된 일로 보입니다.  야베스의 영역 확대 청원은 그가 가진 고통스런 상황에서 탈피하는 것과 함께 어우러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하옵소서”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족보에 기록된프로파일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특기사항입니다. 이것은 야베스의 일생에서도 이런 큰 구원은 단 한 번만 있었던 일이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니까 야베스는 어떤 극심한 고통에서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구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지경을 넓혀 달라는 청원 자체가 아니고  심한 고통과 역경에 빠진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만 드리면 소원이 다 성취되고 날마다 응답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승리주의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능력이 크시므로 불가능한 일로 보이던 문제가 해결되게도 하시고 간절히 기도한 일이 뜻밖에 응답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기적의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큰 환난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살 소망까지 끊어졌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도들이 다 그와 같은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10년 정도의 사역밖에 못하고 헤롯왕에게 잡혀일찍 순교를 당하였습니다(행 12:2). 세례요한과 스데반은 그보다 먼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형제였던 요한은 오래 살면서 여러 지역으로 다니며 사역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옥에 갇혔지만 기적으로 옥문이 열려서 구출되었고 장기사역을 하였습니다(행 12:3-19). 사도들이라면 모두 복음사역의 영역이 넓혀지도록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모두 야베스의 기도응답을 받아 항상 일이잘 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응답을 받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성경에는 기도자의 소원대로 응답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도였지만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지않았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고난의 잔이 지나가기를 기도하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처음에는 간절한 소원기도를 올렸지만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자신들의 소원을 내려놓았습니다.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한 두마디의 기도를 뽑아내어 모든 기도의 원칙으로 삼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런 식의 적용은 편견과 불균형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에게는 옳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응답을받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문 자체가 다른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응답을 보장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의 원칙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아무도 구할 수 없는 큰 곤경에 빠진 사람을 하나님이 극적으로 구해 주셨다는 교훈을 담은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것이지야베스의 기도문을 기계적인 축복기도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항간에 나돌고 있는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서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야베스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주의 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에 드러나는 초월적인 능력을 상징합니다(참조. 수 4:24; 시 89:21사 59:1; 행 11:21).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관련된것으로서 개인의 소원성취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주의 손이 자기를 도와서 환난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은 개인적인 고통의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연결된 것이었다고보아야합니다. 이것이 곧 주기도문의 정신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요청도 나오고 시험에 들지않게 해 달라는 간구도 나옵니다. 악으로부터의 보호와 용서를 비는청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첫 번째 청원인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다른 모든 청원에 우선시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야베스의 기도 요청도 이러한 가르침의 문맥에 서이해되어야합니다. 바울도 “너희가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주의손’이 함께하기를 원해서 올리는 기도라면 하나님의이름이  거룩히여김을받고, 십자가로 세우신 주님의 나라가 신속히 완성되며,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뜻이 이땅에 이루어지는  일과  연관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야망달성을 위해 하나님을 끝없이 조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요술이아닙니다. 날마다 이 기도를 반복한다고 사업이 잘되거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계획과 선한 뜻에 달린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이 늦추어질수도 있고 혹은 이세상에서 받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복지를 위한 것일 때에도 우리 자신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목적과 동기가 주기도문의 기도정신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자기확장을 위해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성공하여 걱정없이 잘살았다는 간증이아니고, 환난중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크게 드러났는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야베스의 기도를 올려야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가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식의기도들은 비록 겉으로는 응답을 받은듯이 보일지 몰라도 우리들의 족보에 특기사항으로 기재될 프로파일이 될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목적과 의도로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자기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한다면 어떤 종목을 놓고 기도하시겠습니까? 개인이 받은 소명에 따라서 주님을 더많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한 것일수도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돈을 더 벌어야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손이 닿아야하는 부분은외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부족한 성품의 영역도 있고, 성경이해의 영역도 있으며, 선행과 사랑의영역도있습니다.

당신은 내적인 변화를 위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린 적이있습니까?  야베스는 주님의도우심으로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종류의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근심거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어떻게연결되고 있습니까? 자신의 내적변화가 더디고 영적 성숙이 잘되지않아서 근심해본 적이있습니까? 그런 것에서 구출되기 위해 자신의 영성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도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주의 손이 함께하셔서우리들의 지경이 넓혀지고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기를 빕니다.

플로리다 코리아 위클리 08.0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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